MAP OF SEOUL

銅版本

1900년

45.0×45.0cm

英國 王立亞細亞協會 소장

  이 지도는 영국의 왕립아시아협회한국지부에서 발행한 『Transaction of the Korea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1900∼1912)의 합본 6권 중 제3권 (1900년 간행)의 부록으로 있던 것이다.

  이 지도는 정사각형의 방안 81개(세로와 가로에 9개씩 있는데 세로는 1에서 9까지, 가로는 A부터 I까지)안에 도성의 안팎을 정확하게 측량하여 그렸다. 측량자, 측량집행기관, 발행연도, 축척 등은 밝히지 않았으나 지명, 도로, 건물, 산하 등은 한글과 한문으로 정확하게 표기하였다. 또 북쪽은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까지 압축하여 그렸으나 남쪽은 남산에서 한강변까지만 그렸다. 즉, 한강은 그리지 않았다. 도성의 성곽은 다섯줄을 함께 나란히 긋고 그 위에 톱니처럼 그려 성곽의 높이와 생김새를 나타냈다.

  이 지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500년 동안 광화문 앞 육조(六曹)거리의 호조(戶曹)와 사조(史曹) 사이에 있는 한성부(漢城府) 청사가 서대문 밖에 있는 경교(京橋) 옆으로 옮겨져 있는 점, 정부 부처의 이름과 위치가 바뀐 점(六曹가 八衙로), 이 지도제작 때 측량을 담당했던 기관인 양지아문(量地衙門;1898∼1902년 사이에 존속)이 도지부(度支部)와 농부(農部) 사이에 있는 점, 영은문과 모화관 대신에 독립문(1898년 12월 준공)과 독립관이 있다는 점 등이다.

  이 지도의 축척은 1:12,500이다.



京 城《大韓帝國地圖》의 삽도(揷圖)
경성

동판본(銅版本)

현공염(玄公廉)

1908년

11.1×13.3cm

윤형두(尹炯斗) 소장

  1908년(隆熙 2)에 일본 유학생 현공염이 제작한 〈대한제국지도(大韓帝國地圖)〉의 우측 하단에 삽입된 서울의 도성 안을 자세히 그린 지도. 현공염은 같은 해에 학생용 지리교과서와 지도책을 펴냈으며, 그 지도책의 경기도 지도에 같은 〈경성(京城)〉도가 삽입되어 있다. 도성 안의 가로망과 하계망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으며, 오부(五部)와 방(坊), 동명이 기입되어 있고, 전차 궤도와 경의, 경부선이 표시되어 있다. 당시의 경성정거장(경성역)은 현재의 서울역 자리가 아닌 서대문 남쪽, 이화여고 서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의선 철도가 현재의 독립문 동측을 거쳐 무악재로 넘어 가도록 표기한 것은 오류일 것이다.

  지명에도 오자(誤字)가 많다. 안암동(安岩洞)이 안치동(安治洞), 응봉(應峯)이 경봉(慶峯)으로 표기된 것은 그 보기이다. 또 타락산(駝駱山)을 낙타산(駱駝山)으로 표기한 것도 눈에 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대한여지도(大漢輿地圖)〉등에 삽입된 〈한양경성도(漢陽京城圖)〉에는 모두 타락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타락'은 몽고어로 발표된 '마유(馬乳)', 즉 요구르트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타락산 또는 줄여서 '낙산'으로 부르는 이곳에서는 '타락', 즉 발표된 마유(낙죽)를 만들어 팔던 곳이라는 뜻에서 온 지명으로 추정된다.

   지도를 그리는 기법에도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일본을 거쳐서 도입된 우모식(羽毛式) 지형표시를 이 지도에서 볼 수 있다. 발행은 서울의 박문서관(博文書館)이나, 인쇄처는 일본으로 되어 있다.
해설 : 이찬, 양보경 『서울의 옛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