最新京城全圖
경성





1907년

1:10,000

74.8×52.9cm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1907년에 일한서방日韓書房에서 간행한 1:10,000 지도이다.
  원제목은 <실측상밀 최신경성전도實測詳密 最新京城全圖>이며, 1907년(明治40년) 3월에 초판 발행한 것을 그 해 11월에 수정하여 재판을 찍은 것이다. 저작겸발행자는 모리야마요시오(森山美夫)이며, 인쇄소와 인쇄자는 모리카와인쇄소(森川印刷所)의 모리카와소자부로(森川桑三郞)로 일본에서 인쇄되었다.
   지도에는 행정구역인 5서署의 경계와 경성의 경계인 도성벽은 붉은 선으로 표시하였다. 종로와 남대문로 등의 주요 간선도로도 붉은 선으로 인쇄해 강조하고 있다. 도성 내의 지명인 방과 동의 명칭은 청계천을 경계로 하여 북쪽은 전통적인 지명을 대개 유지하고 있으나, 남쪽의 남산자락에 위치한 곳의 지명은 명치정,본정 등 일본식으로 거의 바뀌었고, 지명의 표시도 일본어 표기로 대부분 바뀌었다. 그리고 경복궁을 舊王城으로, 경운궁을 新王城으로 표기하였다.
   범례에는 없지만 경성부 내의 한국주차군 사령부와 예하 부대 등 일본군 주둔지와 통감부 관할 하의 헌병대, 경찰서, 관청 등은 일장기로 위치를 표시하였다. 그리고 충무로 일대에는 ‘×’와 ‘+’기호로 위치를 표시한 후 작은 글씨로 상점과 여관 및 병원 등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이렇게 표시된 상점 등은 주로 남산아래에 있고 청계천 이북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본인이 운영하는 곳을 표시해 놓은 듯하다.
   이 지도가 제작된 시기는 1905년(광무 9)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이후에 해당이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한 일제는 육조거리에 통감부統監府를 설치하고 통감을 주재시켜 이른바 보호정치를 시행하면서 조선합병을 더욱 노골화하였는데, 이 지도는 이러한 시기적 상황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해설 : 서울역사박물관




京城市街全圖
경성





1910년

108.8×115.5cm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경성시가전도京城市街全圖>는 일본 오사카 아르모인쇄합자회사(アルモ印刷合資會社)에서 1910년에 간행한 병합기념 <대일본전도大日本全圖>(조선 포함)의 뒷면에 있는 지도이다.
  편집 겸 발행인은 사이토가츠조(財藤勝藏)이며, 방위표시는 있지만 축척은 별도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지도 중앙에는 용산이 포함된 경성 시가지도가 있고, 상단에는 바뀐 동명과 그 설명이 적혀 있으며, 우측 하단에는 <인천시가도仁川市街圖>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주위에는 경성, 용산, 인천항 전경사진과 함께 상점과 은행 등의 광고가 실려 있다.
  '京城'과 ‘龍山’은 큰 글씨로, '5署'는 중간 글씨로, 동명과 주요 건물들은 작은 글씨로 쓰여 있다. 경복궁이 ‘구왕성舊王城’으로, 창덕궁이 ‘현왕성現王城’으로 표기되어 있어 순종이 즉위하면서 창덕궁이 새로운 왕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황토현에서 현 서울시청까지는 신교통新橋通, 현 서울시청에서 남대문까지는 ‘대평정’ 이라는 새로운 거리 이름이 부여되었고, ‘분호조후동分戶曹后洞’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던 현 소공로에는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일본군 주차군사령관이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의 이름을 따서 ‘長谷川町’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 창덕궁의 돈화문 앞에는 ‘왕궁경찰서王宮警察署’가, 경복궁의 근정전과 광화문 사이에는 ‘황궁경찰출장소皇宮警察出張所’와 ‘기병대騎兵隊’가 표시되어 있다. 도성벽은 남대문 양옆 부분이 훼철되고 남대문 주변으로 전찻길과 도로가 개설되었으며, 경희궁과 덕수궁에는 아무런 표시도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1909년 10월에 설립된 ‘한국은행韓國銀行’이 현재의 위치에 있으며, 서대문형무소가 ‘경성감옥京城監獄’ 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남대문로와 충무로 및 명동 일대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점.여관.식당들을 표시해 놓고, 우측 여백에 색인을 붙여 놓았는데 특히 충무로 일대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해설 : 서울역사박물관




京城遊覽案內圖
경성


1920년대 후반

46.3×20.3cm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경성유람안내도京城遊覽案內圖>는 1920년대 후반에 제작된 여행안내용 서울지도이다. 지도에는 서울의 4대문 안과 용산 등 신시가지 모습을 조감도처럼 그리고, 그 안에 전차노선과 기차역.총독부. 경성부.조선신궁.은행.공원.군사령부 등 주요 시설과 지명 등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표시해 놓았다.
   지도의 제작시기는 전차노선 중 장충단선(1926년 4월)이 있는 반면 남대문-광화문 노선(1928년 10월)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1920년대 후반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의 조선 관광과 그들의 식민지인 조선을 알리려는 의도에서 많은 여행안내서들이 제작되었다. 특히 철도를 통해 조선여행 업무를 주관하였던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일본인들의 조선 이주와 조선 여행에 필요한 안내서와 함께 여러 종류의 여행안내지도들을 많이 제작하였다.
해설 : 서울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