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구(城東區)
서울 도성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성동구라 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대부분 한성부에 속한 성외(광희문 밖)지역이었다. 1943년 4월 성동구가 되었고, 1975년 10월 성동구의 일부가 강남구로 나누어졌다.
금호동(金湖洞)
도선동(道詵洞)
마장동(馬場洞)
사근동(沙斤洞)
상왕십리동(上往十里洞)
성수동(聖水洞)
송정동(松亭洞)
옥수동(玉水洞)
용답동(龍踏洞)
응봉동(鷹峰洞)
하왕십리동(下往十里洞)
행당동(杏堂洞)
홍익동(弘益洞)
유래 : 옛날 이 마을을 ‘무쇠막’ ‘무시막’ 또는 ‘무수막’이라 하였는데, 한자로는 水鐵里라 함. 이곳은 銑鐵을 녹여 무쇠솥,농구 등을 주조하던 곳으로, 金湖洞의 ‘金’은 水鐵里의 ‘鐵’에서, ‘湖’는 ‘水’에서 인용하여 金湖洞이라 한 것임. |
유래 : ① 통일신라 下代에 風水圖讖設을 발전시킨 道詵大師가 舞鶴峰에서 수도했다는 전설에 따라 道詵大師의 이름을 따서 붙임.
② 조선초에 無學大師가 태조의 명으로 도읍지를 물색하던 중 왕십리에 와서 지세를 살피고 있었는데, 소를 타고 지나던 한 노인이 무학대사를 보고 서북쪽으로 10리를 더 가라는 가르침을 받았는데, 바로 이 노인이 顯靈한 道詵大師라 생각하여 道詵洞이라는 동명이 생겨남. |
馬場洞의 洞名은 朝鮮初期부터 말을 기르던 養馬場이 이곳에 있어서 馬場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
유래 : 이 마을에 사근절(沙斤寺)이 있었던 데서 붙여진 이름. |
유래 : ① 조선초에 無學大師가 도읍을 정하려고 이곳까지 와서 한 늙은 농부로부터 10리를 더 가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往十里’라는 동명이 생겼다고 하며, 그 늙은 농부는 道詵大師의 化身이었다고 함.
② 이곳은 도성으로부터 10리 떨어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踏十里와 같이 往十里라는 동명이 생겨남. |
유래 : 조선시대 임금이 거둥하여 말을 기르는 것과 군대의 鍊武를 사열하던 聖德亭의 '聖'자와 이 마을 624번지 일대 纛島水源地의 '水'자를 따서 붙였음. |
유래 : 동명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옛날 이곳은 나라 말을 기르던 곳으로 ‘솔마장벌' 또는 ’養馬場坪‘이라 불렀으며, 이 ’솔마장‘은 숫말을 기르던 곳이라 하여 ’숫마장‘으로 부르던 것이 轉音되어 ’솔마장‘이 되고 솔마장을 한자로 옭겨 ’松亭‘이 되지 않았나 추측됨. |
유래 : 지금의 339번지에 ‘玉井水’라는 유명한 우물이 있었으므로 ‘옥정숫골’로 불리었는데, 한자로 玉水洞으로 붙여졌음. |
유래 : 龍頭洞 지역과 踏十里洞 지역 일부가 1975년 10월 1일 통합되어 이루어졌기 때문에 머릿글자인 ‘龍’ ‘踏’을 따서 龍踏洞이 되었음. |
유래 : 이곳에 鷹峰山이 있기 때문에 붙여짐. 鷹峰의 산 이름은 산 모양이 매(鷹)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졌다고도 하며, 또는 왕이 이곳에서 매사냥을 하였기 때문에 매봉이라고 하였음. |
유래 : ① 조선초에 無學大師가 도읍을 정하려고 이곳까지 와서 한 늙은 농부로부터 10리를 더 가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往十里’라는 동명이 생겼다고 하며, 그 늙은 농부는 道詵大師의 化身이었다고 함.
② 이곳은 도성으로부터 10리 떨어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踏十里와 같이 往十里라는 동명이 생겨남. |
유래 : 口傳에 의하면 행당초등학교 동쪽 산 일대, 즉 아기씨堂이 위치한 곳에 옛부터 살구나무와 은행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
유래 : 우리 민족의 始祖 檀君의 건국이념인 ‘弘益人間’을 따서 제정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