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城北區)

  서울 도성의 북쪽에 위치해 성북구라 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일부는 한성부의 성저십리(城底十里)에 들어가므로 성외 지역에 속했다. 동대문구에 편입되었으며, 1949년 8월 고양군 숭인면의 일부를 편입하여 성북구가 신설되었다. 1973년 7월에는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나누어졌다.

 

길음동(吉音洞)
돈암동(敦岩洞)
동선동(東仙洞)
동소문동(東小門洞)
보문동(普門洞)
삼선동(三仙洞)
상월곡동(上月谷洞)
석관동(石串洞)
성북동(城北洞)
안암동(安岩洞)
장위동(長位洞)
정릉동(貞陵洞)
종암동(鍾岩洞)
하월곡동(下月谷洞)










길음동(吉音洞)

  吉音洞의 동명은 기리묵골을 한자로 고쳐 쓴데서 연유된다. 기리묵골은 의정부 방면에서 惠化門(東小門)을 통과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미아리고개의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의정부 쪽에서 도성 쪽으로 넘어오는 이 고개는 경사가 완만하고 또 貞陵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골짜기가 길게 형성되었다. 따라서 골짜기가 길게 놓여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기리물골 또는 기레미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는 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하도 말고 고와서 물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기분이 맑아지므로서 좋은 노래소리가 들리는 동네라는 뜻으로 길음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길음동은 조선 英祖 때까지는 한성부 동부 崇信坊의 城外의 한 지역으로 되어 있었으나 高宗 2년(1864)에 편찬된 六典條例에 의하면 한성부 동부 숭신방(성외)의 미아리契에 속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漢城府  東部
            崇信坊(城外)
    東小門外契의 彌阿里
 1910년 漢城府가 京城府로 개칭되면서 경기도에 예속되었다가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가 되었다.
  1949년 8월 東大門區에서 城北區가 분리 신설되면서 숭인출장소에서 관할하게 하였다.
  1970년 5월 길음동이 포함된 미아리는 미아1동, 미아2동, 미아3동으로 분할되었다가 1973년 7월 도봉구가 분리 신설됨에 따라 도봉구 미아 제 1,2,3동에 속하게되고 다시 1975년 도봉구 미아동 일부가 성북구로 편입되어 길음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통칭 미아리고개라 부르는 되너미고개는 병자호란때 오랑캐 즉 되놈이 서울에 침입할 때 이 고개를 넘어왔으므로 하여 되너미 고개라 불렀다. 또한 여러가지 명칭의 유래가 전하는데, 남쪽인 돈암동 쪽에서 길음동을 지나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길목인 이 고개가 끝나면 고개가 없으므로 끝에 이른 고개, 마지막고개라는 뜻으로 되너미고개라고 불렀으며, 또 돈암동 쪽에서 길음동 쪽으로 오를 때에는 경사가 몹시 심하기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서 온몸의 기운이 다빠지므로 다시 요기를 해야된다는 뜻인, 밥을 되먹는 고개라는 말이 변하여 되너미고개라고 불렀다고도 전해져 온다.



돈암동(敦岩洞)

유래 : 敦岩峴이란 고개이름에서 유래. 돈암현은 미아리고개의 옛 이름 되너미 고개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되너미 고개는 병자호란때 되놈(청군)이 이 고개를 넘어 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396 : 漢城府 東部 崇信坊(城外)
1895 : 東署 崇信坊(城外) 東門外契 敦岩里 · 三仙坪
1911 : 京城府 崇信面 敦岩里 · 三仙坪
1914 :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敦岩里
1936 : 京城府 敦岩町
1943 : 東大門區 敦岩町
1946 : 東大門區 敦岩洞
1949 : 城北區 敦岩洞



동선동(東仙洞)

유래 : 인접해 있는 東小門洞과 三仙洞에서 각각 글자를 따옴.

1396 : 漢城府 東部 崇信坊(城外)
1895 : 東署 崇信坊(城外) 東門外契 敦岩里 · 三仙坪
1911 : 京城府 崇信面 敦岩里 · 三仙坪
1914 :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敦岩里
1936 : 京畿道 敦岩町
1943 : 東大門區 敦岩町
1946 : 東大門區 敦岩洞
1949 : 城北區 敦岩洞
1963 : 城北區 東仙洞



동소문동(東小門洞)

유래 : 서울의 4小門의 하나인 東小門(惠化門)의 이름에서 연유함.

1396 : 漢城府 東部 崇信坊(城外)
1895 : 東署 崇信坊(城外) 東門外契 敦岩里 · 三仙坪
1911 : 京城府 崇信面 敦岩里 · 三仙坪
1914 :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敦岩里
1936 : 京城府 敦岩町
1943 : 東大門區 敦岩町
1946 : 東大門區 敦岩洞
1949 : 城北區 敦岩洞
1963 : 城北區 東小門洞




보문동(普門洞)

유래 : 보문동3가에 있는 普門寺의 이름에서 연유함. 普門이란 菩薩이 일체의 性德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기회.시기에 따라 그 妙用을 보임을 말함.

1396 : 漢城府 東部 崇信坊(城外)
1867 : 東部 崇信坊(城外) 新設契
1895 : 東署 崇信坊(城外) 東門外契 新里 · 新設洞
1911 : 京城府 崇信面 新設契 · 塔洞 · 遇仙里 · 安岩新里
1914 :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新設里
1936 : 京城府 新設町
1943 : 東大門區 新設町
1946 : 東大門區 新設洞
1955 : 東大門區 普門洞
1975 : 城北區 普門洞




삼선동(三仙洞)

유래 : 惠化門(東小門) 밖의 三仙坪이라는 들판 이름에서 유래. 삼선평이라는 이름은 이 동 남쪽의 玉?峰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세 神仙과 더불어 玉女가 놀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함.

1396 : 漢城府 東部 崇信坊(城外)
1895 : 東署 崇信坊(城外) 東門外契 三仙坪 · 敦岩里
1911 : 京城府 崇信面 敦岩里 · 三仙坪
1914 :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敦岩里
1936 : 京城府 敦岩町
1943 : 東大門區 敦岩町
1946 : 東大門區 敦岩洞
1949 : 城北區 敦岩洞
1963 : 城北區 三仙洞




상월곡동(上月谷洞)

유래 : 下月谷洞에 있는 산의 형세가 마치 반달과 같다하여 그 산과 인접해 있는 마을을 다릿굴(골)이라 불렀는데, 이 중 높은 지대에 위치한 이 지역을 웃다릿골(上月谷洞)이라 불렀다.

1396 : 漢城府 東部 崇信坊(城外)
1867 : 東部 崇信坊(城外) 月谷里契
1895 : 東署 仁昌坊(城外) 東小門外契 月谷上里
1911 : 京城府 東部 仁昌面 上月谷
1914 :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上月谷里
1949 : 城北區 上月谷里
1950 : 城北區 上月谷洞




석관동(石串洞)

유래 : 이 마을 동쪽에 있는 天藏山의 한 맥이 검정돌을 꽂아 놓은, 즉 수수팥떡이나 경단을 꼬지에 꿰어 놓은 것 같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돌곶이마을’이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옮긴 데서 ‘石串洞’ 동명이 유래.

1396 : 漢城府 東部 仁昌坊(城外)
1751 : 東部 崇信坊(城外) 長位里契
1895 : 東署 仁昌坊(城外) 東小門外契 石串里
1911 : 京城府 東部 仁昌面 石串里
1914 :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石串里
1949 : 城北區 石串洞




성북동(城北洞)

유래 : 조선시대 도성(都城) 수비를 위한 御營廳의 北屯이 설치되었던 관계로 붙여진 동명. 즉 마을이 도성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396 : 漢城府 東部 崇信坊(城外)
1895 : 東署 崇信坊(城外) 東小門外契 城北洞
1911 : 京城府 崇信面 城北洞
1914 :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城北里
1936 : 京城府 城北町
1943 : 東大門區 城北町
1946 : 東大門區 城北洞
1949 : 城北區 城北洞




안암동(安岩洞)

유래 : 안암동3가 대광아파트단지 가운데 큰 바위가 있어 20여 명이 앉아 편히 쉴만하여 ‘앉일바위’라 이름하였고, 이를 한자로 옮겨 ‘安岩’이라 한데서 동명이 유래.

1396 : 漢城府 城底十里
1867 : 東部 崇信坊(城外) 安岩洞契
1895 : 東署 崇信坊(城外) 東門外契 園里 · 宮里 · 上里 · 中里
1911 : 京城府 崇信面 安岩里 · 剖石洞 · 宮里 · 園里
1914 :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安岩里
1936 : 京城府 安岩町
1943 : 東大門區 安岩町
1946 : 東大門區 安岩洞
1949 : 城北區 安岩洞




장위동(長位洞)

  長位洞 洞名의 유래는 알 수 없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朝鮮時代의 大臣 尹容求가 이곳에 隱居했을 때부터 붙여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으나 시대적으로 보아 윤용구의 활동시기는 조선후기 哲宗 高宗年間이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초에도 長位里라 불리어 온 것으로 보아 高麗朝 때 名臣이 이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하고, 또 하나는 마을 뒤 獐位山이 있으므로 이 산의 이름을 따서 長位洞으로 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도 갖게 한다.
  조선 太祖5년(1396)에 都城 및 城底를 5部(東西南北中) 52坊으로 구역을 획정할 때 동부에 소속되었으며 조선후기 英祖 27년(1751)에 간행된 守城冊字「都城三軍分界總錄」에
  東部
      仁昌坊(城外)
           長位里契로되어 御營廳 前營에 소속되어 都城防禦에 일익이 되기도 하였다.
그뒤 갑오개혁(1894)때에도 한성부 동서 인창방(성위) 東小門外契의 長位里가 되었다.  日帝의 침략으로 漢城府를 京城府로 고친 다음 1911년 4월 1일 장위동을 경성부 인창면에 편입시켰다. 1914년 4월 1일 장위동은 城外지역에 해당된다 하여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으로 편입시켰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식 명칭이었던 경성부를 서울市로 고친뒤에 이어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명칭을 우리의 고유명으로 개칭할 때 고유명 그대로 장위리로 불리어졌다.
  1949년 8월 13일 성북구가 분리 신설될 때 장위동은 고양군 숭인면에서 서울시로 편입됨과 동시에 성북구 관할아래 두었다.
  조선시대 장위동의 자연부락을 살펴보면 웃말, 아랫말, 명덕굴, 간대마을 활량(한량)리 등 5개의 자연부락이 합쳐 현재의 장위동으로 형성되었다.




정릉동(貞陵洞)

유래 : 太祖 李成桂의 繼妃 神德王后 康氏의 陵인 貞陵이 있으므로 인해 붙여진 이름.

1396 : 漢城府 東部 城外
1867 : 東部 崇信坊(城外) 陵洞契
1895 : 東署 崇信坊(城外) 東小門外契 小貞陵洞 · 孫哥亭 · 淸水洞
1911 : 京城府 崇信面 大貞陵洞 · 小貞陵洞 · 孫哥亭 · 淸水洞
1914 :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貞陵里
1949 : 城北區 貞陵里
1950 : 城北區 貞陵洞




종암동(鍾岩洞)

  鐘岩洞의 동명은 고려대학교 뒷산에 북(鼓)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漢字로 鍾岩(또는 鼓岩)이라고 부른데서 연유되었다.
  종암동은 高宗 2년(1864)에 편찬된 六典條例에 의하면 東部 崇信坊(城外)의 鍾岩洞契로 되어있었다.1894년 갑오개혁시 종래 漢城府의 5部를 5署로 고침과 동시에 契와 洞도 증가시켰는데 종암동은 이때에
    漢城府 東署
          仁昌坊(城外)
                東大門契의 大鍾岩 小鍾岩으로 되었다.
  1910년 10월 1일 漢城府는 京城府로 고쳐져서 경기도의 소속으로 되었다.
  1914년 9월 종암리는 경성부의 동부 출장소의 관할하에 있게 되었다가 이듬해 6월 경성부의 직할로 된다.
1936년 4월 대종암리 소종암리는 종암리로 통합되어 경성부로 편입되었다.
1943년 동부출장소는 동대문구와 성동구로 나뉘면서 鍾岩町은 동대문구의 소속이 되었다.
1946년 日帝式 명칭인 町, 丁目등이 우리말인 洞, 街등으로 바뀜에 따라 鍾岩町도 鍾岩洞으로 개칭되었고 1949년 8월 東大門區에서 城北區가 분리, 신설됨에 따라 종암동은 성북구의 관할이 되었다.
  1970년 종암동은 종암1동과 종암2동으로 分洞되고 1978년 종암동의 일부가 下月谷洞으로 되었다.
  종암아파트가 위치한 뒷산의 이름은 陳石山이다. 이 산은본래 이름이 없던 돌산(石山)이었으나 산의 주인이 陳씨 성을 가졌고 산 또한 전체가 돌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陳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주인인 돌산이라는 뜻에서 陳石山이 라 불렀다. 陳石山의 돌은 집지을 때 석재로 사용되었는데 石質은 물론 쌀뜨물 빛을 띄운 색깔까지도 좋았기 때문에 돈이 많거나 세도가 당당한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는 반드시 陳石山의 석재를 이용했다고 하며 중앙청(舊 조선총독부)을 지을 때에도 이 곳의 석재를 일부 사용하였다.




하월곡동(下月谷洞)

유래 : ① 하월곡동에 있는 산의 형세가 마치 반달과 같다 하여 그 산과 인접해 있는 마을을 다릿굴(골)이라 불렀는데 이 중 아래지역을 아랫다릿골(下月谷洞)이라 함.
② 조선후기 미아삼거리에 신근솔이란 솔밭이 많아 풍치가 수려하였기 때문에 당시 이곳에 주막이 밀집해 있었고, 지방에서 소를 몰고 서울로 들어올 때 이곳에서 숙박을 하고 소를 매어 놓았다가 장위동 도살장에서 소를 판 다음 돌아갔는데, 소장사들이 달밤에 도착하여 殘月 아침에 흥정을 하였기 때문에 月谷이란 동명이 생김.

1396 : 漢城府 東部 崇信坊 城外
1867 : 東部 崇信坊(城外) 月谷里契
1895 : 東署 仁昌坊(城外) 東小門外契 月谷下里
1911 : 京城府 東部 仁昌面 下月谷
1914 :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下月谷里
1949 : 城北區 下月谷里
1950 : 城北區 下月谷洞